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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8화 · [1부] 7화. 검은 표

[1부] 7화. 검은 표

유스틴 모리츠.

그 이름이 귀에 닿는 순간, 나는 웃을 뻔했다. 세상에서 가장 말이 안 되는 이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백을 증명할 유일한 사람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럴 리 없어. 다들 잘못 안 거야. 아무도 안 믿지, 에르네스트?"

"처음엔 아무도 안 믿었어. 그런데 정황이 하나씩 나왔어."

동생의 말은 이랬다. 시신이 발견된 날부터 유스틴은 앓아누웠다. 그사이 하인 하나가, 그날 밤 유스틴이 입었던 옷 주머니에서 어머니의 초상 목걸이를 찾아냈다. 살인의 미끼로 지목된 그 물건을.

하인은 곧장 치안판사에게 갔다. 유스틴은 체포됐고, 추궁 앞에서 심하게 허둥댔다. 그 허둥댐이 그대로 유죄의 증거가 됐다.

"오늘 재판이 열려. 형도 가면 다 듣게 될 거야."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내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들 틀렸어. 유스틴은 결백해."

그때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슬픔이 깊게 밴 얼굴로 애써 반갑게 나를 맞으셨다. 에르네스트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버지, 형이 범인을 안대요."

"우리도 안단다. 아끼던 사람의 배은망덕을 보느니, 차라리 영영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아버지, 아니에요. 유스틴은 결백해요."

"그렇다면 하늘이 그 아이를 유죄로 두지 않겠지. 오늘 재판이다. 나도 진심으로 무죄 방면을 바란다."

그 말이 나를 진정시켰다. 이 살인 앞에서는 세상 어떤 인간도 결백하다. 그걸 아는 건 나뿐이지만,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없는 죄를 유죄로 만들 정황이 있을 리 없으니까.

곧 엘리자베스가 내려왔다. 어린 시절의 생기 위에 육 년의 깊이가 얹힌 얼굴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오빠가 와서 희망이 생겼어요. 그 애가 유죄가 되면 세상에 안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유스틴의 결백을 내 결백처럼 믿어요."

"결백해. 증명될 거야. 걱정 말고 기다려."

"다들 유죄라고 믿는데, 오빠만 그렇게 말해 주네요."

엘리자베스가 울었다.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

열한 시. 재판이 시작됐다.

식구들이 증인으로 불려 갔고, 나도 법정에 들어섰다. 정의라는 이름의 조롱극이었다. 그 몇 시간을 나는 산 채로 고문당했다.

내 호기심이 두 생명의 값을 치르게 될 참이었다. 하나는 웃음이 전부이던 아이. 하나는 오명을 쓰고 무덤으로 갈 처녀.

차라리 내가 자백하고 싶었다. 천 번이라도. 하지만 사건 당시 나는 잉골슈타트에 있었다. 내 자백은 미친 자의 헛소리가 될 뿐, 유스틴을 구하지 못한다.

유스틴이 입장했다.

상복 차림이었다. 수천 개의 눈이 저주를 쏘아보는데도 떨지 않았다. 만들어 낸 침착함이었다. 허둥댐이 유죄의 증거로 쓰였으니, 이제는 용기를 꾸며 내는 길밖에 없었다.

유스틴은 눈으로 우리를 찾았다. 발견한 순간 눈가가 흐려졌다가 곧 추슬러졌다. 그 슬픈 애정의 눈빛이, 내게는 어떤 증언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증인들이 차례로 나왔다. 사실들이 쌓여 갔다.

사건 당일 밤, 유스틴은 밤새 밖에 있었다. 새벽녘엔 시장 여인이 시신 발견 지점 근처에서 그녀를 봤다. 뭘 하느냐 물으니 넋 나간 얼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만 했다고 한다.

여덟 시쯤 돌아와서는 윌리엄 소식부터 물었다. 시신을 보자 발작하듯 쓰러져 며칠을 앓았다.

그리고 목걸이가 증거로 제출됐다.

엘리자베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했다. 아이가 사라지기 한 시간 전, 제 손으로 윌리엄의 목에 걸어 준 그 목걸이라고.

법정이 술렁였다. 분노의 웅성거림이 방청석을 훑고 지나갔다.

유스틴의 차례가 왔다. 얼굴에서 침착함이 조금씩 벗겨져, 놀람과 공포와 비참이 번갈아 지나갔다. 그래도 입을 열 때는 힘을 그러모았다.

"신께서는 제가 결백하다는 걸 아세요. 하지만 맹세로 무죄가 되겠다는 게 아니에요. 저를 겨눈 사실들을 하나씩 설명드릴게요. 그러고도 의심이 남는다면, 제가 살아온 모습으로 판단해 주시기를 빌 뿐이에요."

설명은 단순했다. 그날 저녁, 엘리자베스의 허락을 받아 셴의 숙모 집에 다녀왔다. 아홉 시쯤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몇 시간을 찾아 헤맸다.

그사이 성문이 닫혔다. 아는 농가를 한밤에 깨우기 미안해 헛간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새벽녘에 잠깐 졸다가 발소리에 깼고, 날이 밝아 다시 아이를 찾으러 나왔다.

시신이 있던 자리 근처를 지났다 해도 모르고 지난 길이었다. 시장 여인 앞에서 넋이 나가 있었던 건, 밤을 새운 데다 윌리엄의 생사를 모르던 참이었으니 이상할 게 없다.

목걸이에 대해서만은, 아무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

"그 하나가 제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아요. 하지만 설명할 힘이 없어요. 누가 제 주머니에 넣었는지 몰라요. 제게는 원수가 없어요. 살인자가 넣었을까요? 목걸이가 탐나 사람을 죽인 자가, 왜 그걸 금방 버리겠어요."

유스틴은 마지막으로 성품 증인을 청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불려 나왔다. 좋은 말을 하긴 했지만 다들 머뭇거렸다. 그녀가 저질렀다는 죄의 공포가 혀를 반쯤 묶어 놓았다.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걸 보다 못해 엘리자베스가 발언을 청했다.

"저는 살해당한 아이의 사촌, 아니, 누나입니다. 그 애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까요. 나설 자리가 아닌 줄 알지만, 친구라던 사람들의 비겁함 때문에 한 사람이 죽어 가는 걸 보면서 입을 다물 수는 없었어요."

엘리자베스는 한집에서 보낸 세월을 말했다. 내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사람이 유스틴이었다는 것. 제 어머니의 긴 병수발에 보는 이마다 감탄했다는 것. 윌리엄을 친어머니처럼 아꼈다는 것.

"이 모든 증거에도 저는 그녀의 결백을 믿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었어요. 증거라는 그 장신구, 갖고 싶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기꺼이 줬을 겁니다. 저는 그녀를 그만큼 아낍니다."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러나 감탄은 엘리자베스의 관대함을 향했다. 유스틴에게는 배은망덕이라는 낙인만 더 얹혔다. 은인의 목걸이를 훔친 여자.

증언 내내 유스틴은 소리 없이 울었다.

견딜 수 없었다.

저 애가 결백하다는 걸 나는 안다. 믿는 게 아니라 안다. 내 동생을 죽인 그 악마가, 장난처럼 결백한 사람 하나를 오명과 죽음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판사들의 얼굴에 판결은 이미 나 있었다.

나는 법정을 뛰쳐나왔다.

죄를 뒤집어쓴 사람의 고통도 내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결백이 있었다. 내 가슴에는 양심의 이빨이 박혀 빠지지를 않았다.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아침에 법정으로 갔다. 입이 바짝 말라 차마 묻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나를 알아본 관리가 먼저 말했다.

표는 전부 검었다. 유스틴은 유죄였다.

그때 느낀 것을 담을 말을 지금도 찾지 못한다. 공포라면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관리가 말을 이었다.

"자백도 했습니다. 명백한 사건이지만 그래도 다행이지요. 정황만으로 사람을 처형하고 싶은 판사는 없으니까."

자백이라니.

내 눈이 잘못 본 건가. 그 폭풍우 속 실루엣이, 내가 정말로 세상이 믿는 대로 미친 건가.

집에 돌아오자 엘리자베스가 결과를 물었다.

"네 예상대로야. 판사들은 죄인 하나를 놓치느니 무고한 열을 벌하는 쪽을 고르지."

숨을 고르고, 나머지를 말했다.

"자백했대."

엘리자베스에게 그 말은 판결보다 더한 타격이었다.

"이제 인간의 선함을 어떻게 믿어요? 자매처럼 사랑한 사람인데. 그 순한 눈이 살인을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얼마 뒤, 유스틴이 엘리자베스를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왔다. 아버지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판단은 맡기마 하셨다.

"갈 거예요. 죄인이라 해도 가요."

엘리자베스가 나를 봤다.

"오빠도 같이 가요. 혼자서는 못 가요."

그 면회는 고문이었다. 그래도 거절할 수 없었다.

감옥은 어두웠다. 유스틴은 구석의 짚더미 위에, 쇠고랑 찬 손목에 고개를 묻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일어났고, 간수가 나가자 엘리자베스의 발치에 몸을 던지며 울었다.

"유스틴. 왜 내 마지막 위안을 빼앗았어. 네 결백을 믿고 있었는데. 그때도 비참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어."

"아가씨마저 제가 그렇게까지 사악하다고 믿으세요? 아가씨마저 저들 편에 서서 저를 살인자로 모시겠어요?"

울음에 목소리가 잠겼다. 엘리자베스가 유스틴을 일으켰다.

"결백하면 왜 무릎을 꿇어. 나는 네 적이 아니야. 증거를 다 보고도 믿었어. 네 입으로 자백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게 거짓이라면, 아무것도 내 믿음을 흔들 수 없어."

"자백했어요. 하지만 거짓 자백이었어요."

유스틴이 고개를 들었다.

"선고가 내려진 뒤로 고해신부가 저를 몰아붙였어요. 뉘우치지 않으면 파문이라고, 임종의 순간에 지옥불이 기다린다고. 나중에는 저조차 제가 그 말대로 괴물인가 싶어졌어요. 제 편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거짓말에 서명했어요. 이제야말로 정말 비참해요."

유스틴은 흐느끼다 말을 이었다.

"제일 무서웠던 건 아가씨가 그걸 믿는 거였어요. 마님께서 아껴 주시고 아가씨가 사랑해 준 유스틴이, 악마나 저지를 짓을 했다고. 윌리엄 도련님은 곧 하늘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오명을 쓰고 죽으러 가는 몸에는 그 생각이 위로예요."

"용서해 줘. 한순간이라도 널 의심했던 걸. 내가 네 결백을 증명할게. 눈물로든 기도로든 저 돌 같은 심장들을 녹여 볼게. 내 소꿉친구가, 내 자매가, 처형대라니.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나는 못 살아."

유스틴이 고개를 저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그 고비는 이미 지났어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으로 기억해 주신다면, 저는 제 몫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동안 나는 감방 구석에 물러나 있었다. 절망. 누가 감히 그 단어를 입에 올리나. 내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 저 사람도 나만큼 깊은 바닥은 모른다.

이가 갈렸다.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스틴이 흠칫 놀라 이쪽을 봤다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도련님. 도련님은 제가 죄인이라 믿지 않으시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엘리자베스가 대신 말했다.

"나보다 더 믿었어. 자백 소식에도 안 믿은 사람이야."

"감사해요. 마지막이 되니 다정한 마음이 뼈에 사무쳐요. 두 분이 결백을 알아주시니, 이제 편히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죽으러 가는 사람이 남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 바람대로 유스틴은 평온을 얻어 갔다. 진짜 살인자인 나는, 가슴속에서 죽지 않는 벌레가 파먹는 소리를 들었다.

엘리자베스의 슬픔은 결백한 자의 슬픔이었다. 달을 가리는 구름처럼, 흐려도 더럽히지는 못하는. 내 것은 아니었다. 꺼지지 않는 지옥 하나가 몸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몇 시간을 머물렀다. 엘리자베스는 발이 안 떨어지는지 몇 번을 되돌아왔다.

"차라리 너와 같이 죽고 싶어. 이런 세상에서는 못 살아."

유스틴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누르고, 애써 밝은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안았다.

"안녕히 가세요, 엘리자베스 아가씨. 제 하나뿐인 친구. 이게 아가씨의 마지막 불행이기를. 사세요. 행복하게 사시고, 남들도 행복하게 해 주세요."

다음 날 유스틴은 죽었다.

엘리자베스의 절절한 호소도 판사들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도 찾아가 매달렸다. 차갑고 무정한 논리가 돌아왔을 때, 목까지 차올랐던 자백은 입술 위에서 죽었다. 나를 미치광이로 선포할 수는 있어도 판결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유스틴은 살인자로서 처형대에서 죽었다.

나는 내 심장의 고문에서 눈을 돌려 엘리자베스를 봤다. 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 슬픔도 내가 만든 것이었다. 아버지의 상심도, 웃음이 끊긴 집의 적막도. 전부 이 저주받은 두 손이 한 일이었다.

윌리엄, 그리고 유스틴.

내 손이 만든 첫 희생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