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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7화 · [1부] 6화. 번개가 비춘 것

[1부] 6화. 번개가 비춘 것

봉인을 뜯었다.

밀랍이 손끝에서 바스러졌다. 종이를 펼치자 아버지의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늘 반듯하던 글씨가 첫 줄부터 흔들려 있었다.

「빅터야.」

「돌아올 날짜를 정하자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나도 처음엔 그 몇 줄만 적으려 했다. 하지만 그건 잔인한 친절이 되겠구나. 기쁜 얼굴로 문을 열 네가 눈물과 마주하게 될 테니, 미리 알려야겠다.」

「그런데 빅터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윌리엄이 죽었다.」

「그 애가 살해당했다.」

「위로의 말은 쓰지 않으마. 있었던 일만 적겠다. 지난 목요일 저녁, 나와 엘리자베스, 네 두 동생이 플랭팔리로 산책을 나갔다. 날이 좋아 평소보다 멀리 걸었지.」

「앞서 뛰어가던 윌리엄과 에르네스트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더구나. 에르네스트만 돌아왔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윌리엄을 놓쳤다고 했다.」

「날이 저물도록 찾았다. 엘리자베스가 먼저 집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집에도 없었다. 나는 그 어린것이 밤이슬 속에 혼자 있을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 횃불을 들고 다시 나갔다.」

「새벽 다섯 시에 내가 찾았다. 풀밭에 누워 있더구나. 전날까지 뛰어다니던 아이가, 창백하게 식어서.」

「목에 손자국이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시신을 보겠다고 고집했다. 그 애 목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날 저녁 윌리엄이 네 어머니의 초상 목걸이를 걸어 보고 싶다고 졸랐고, 엘리자베스가 걸어 줬다더구나. 목걸이가 사라졌다. 범인은 그걸 노렸을 게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그 애를 죽였다며 울기만 한다.」

「네 어머니가 이 꼴을 못 보고 간 것을, 나는 처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돌아와라, 빅터. 엘리자베스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범인을 향한 복수심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을 다독일 마음으로 와 다오. 상처는 미움이 아니라 온기로 아무는 법이니.」

편지가 손에서 떨어졌다.

클레르발이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고향 소식에 웃던 낯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굳어 가는 그 표정이 거울처럼 보여 줬다. 나는 편지를 가리키고 방 안을 서성였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클레르발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무슨 위로를 하겠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인데."

클레르발이 젖은 눈을 들었다.

"어떻게 할 건가."

"바로 제네바로 가야지. 헨리, 말을 구해 줘."

마방으로 가는 길, 클레르발은 애써 말을 골랐다.

"가엾은 윌리엄. 지금쯤 천사 같은 어머니 곁에서 잠들어 있겠지. 그 밝고 어여쁘던 아이가, 그런 손에 붙잡혀 그렇게 가다니."

클레르발이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보게. 그 애의 고통은 이미 끝났네. 잔디가 그 여린 몸을 덮었고, 그 애는 이제 아무것도 아프지 않아. 아픈 건 남은 사람들 몫이지. 가엾게 여겨야 할 건 그쪽이야."

빈말이 아니었다. 그 말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아서, 훗날 혼자가 된 밤마다 되살아나곤 했다.

말이 준비되자 나는 마차에 올랐다. 클레르발은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정은 길고 무거웠다. 처음엔 서둘렀다. 슬퍼하는 가족을 한시라도 빨리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줄었다.

육 년이었다.

떠나 있던 시간의 무게가 그제야 덮쳐 왔다. 하나의 참혹한 변화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나머지는. 눈에 익던 거리와 얼굴들은 그사이 얼마나 조용히 변해 버렸을까.

시끄러운 변화보다 조용한 변화가 더 무섭다는 걸, 그 길 위에서 처음 배웠다.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불안 수천 개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로잔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할 일도 없이 호수만 바라봤다. 물은 잔잔했고, 눈 덮인 산들은 육 년 전 그대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자연의 궁전들. 사람의 일이 아무리 뒤집혀도 저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무심함이 이상하게 사람을 진정시켰다. 이틀 만에 겨우 숨이 골라졌고, 나는 다시 제네바로 향했다.

길은 호숫가를 따라 이어졌다.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물길이 좁아졌고, 쥐라의 검은 능선 너머로 몽블랑의 흰 정상이 드러났다.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내 산. 내 호수. 너희는 그대로구나. 이건 평온의 약속이냐, 아니면 조롱이냐.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산들이 시야에서 지워졌다. 검게 뭉개진 풍경이 꼭 거대한 흉조처럼 보였다.

제네바에 닿았을 땐 완전한 밤이었다. 성문이 닫혀 있었다. 도리 없이 반 리외 떨어진 세셰론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하늘은 오히려 맑았다. 여관 창밖으로 별이 보였다. 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그 애가 죽었다. 윌리엄이 죽은 자리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한번 떠오르자 떠나질 않았다.

성안을 지날 수 없으니 배로 호수를 건넜다. 플랭팔리로 가는 그 짧은 뱃길에서, 몽블랑 정상에 번개가 노는 게 보였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뭍에 내려 낮은 언덕에 올랐다. 하늘이 닫히고,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퍼부었다.

나는 걸었다. 어둠과 폭우 속을, 그냥 걸었다.

머리 위에서 천둥이 터졌다. 살레브가, 쥐라가, 사부아의 알프스가 그 소리를 받아 되던졌다.

폭풍은 하나가 아니었다. 호수 북쪽에 가장 사나운 놈이 걸려 있었고, 쥐라 위에서 다른 하나가 희미하게 번뜩였고, 동쪽 산봉우리를 세 번째 폭풍이 삼켰다 뱉었다 했다. 번개가 칠 때마다 호수 전체가 불판처럼 번쩍였고, 다음 순간 세상은 먹물 같은 어둠으로 돌아갔다.

하늘이 통째로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게 위로가 됐다. 사람의 장례로는 모자란 아이였으니까.

나는 두 손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윌리엄! 이게 네 장례식이다! 하늘이 치러 주는 장례식이야!"

그때였다.

나무 덤불 뒤에서 무언가 빠져나왔다.

나는 굳은 채 어둠을 응시했다. 사람인가. 이 폭우에, 이 시간에.

번개 한 줄기가 하늘을 갈랐고, 그 한순간의 빛이 형체를 드러냈다.

거대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키. 사람의 것이라기엔 어긋난 윤곽.

빛은 한순간이었다. 세상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몸이 먼저 기억해 냈다. 그 밤의 냄새. 침대 커튼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던, 젖은 노란 눈.

세상에 저런 몸은 하나뿐이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이가 딱딱 부딪혔다. 나무를 붙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저것이 왜 여기에 있나. 하필 윌리엄이 죽은 이 들판에.

설마.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의심은 곧바로 확신이 됐다. 사람의 손이라면 그 아이를 해칠 수 없다.

그날 밤 이후 이 년. 저것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던 이 년. 시기도, 자리도, 전부 맞아떨어졌다.

그놈이 죽였다.

내가 만든 것이 내 동생을 죽였다.

형체는 빠르게 내 곁을 지나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뒤쫓을 생각도 했다. 부질없었다.

다음 번개가 쳤을 때, 그것은 이미 살레브의 깎아지른 암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사람은 오르지 못하는 수직의 벽을 벌레처럼 타고 올라, 정상 너머로 사라졌다.

천둥이 그쳤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세상은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겼다.

나는 그 빗속에 밤새 서 있었다. 추위도 젖은 옷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잊으려 애썼던 장면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창조에 미쳐 있던 나날. 침대 곁으로 다가오던 그 얼굴. 그리고 도주.

내 손으로 생명을 줬다. 힘을 줬다. 그 힘으로 무엇을 할지는 묻지 않았다.

무덤에서 풀려난 내 망령이었다. 나를 빼닮은 무언가가 세상에 나가,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골라 부수고 있었다.

이것이 처음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저 손은 이미 몇 번을.

생각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 동이 틀 때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였다.

날이 밝았다. 성문이 열렸고,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아는 것을 전부 말하고 당장 추적하게 해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문이 가까워질수록, 말이 목구멍에서 무거워졌다.

무슨 말을 할 건데.

내가 만든 존재가 자정에,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산벼랑에서 나를 스쳐 갔다고? 시체를 이어 붙여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창조 직후 몇 달을 헛소리하며 앓아누웠던 나다. 그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열병의 잔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라도 남이 그런 말을 하면 미친 소리로 여겼을 테니까.

설령 믿어 준다 한들, 그다음은. 살레브의 절벽을 맨몸으로 오르는 것을 누가 잡는단 말인가.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진실을 아는 단 한 사람이 침묵을 고르는 순간이었다.

새벽 다섯 시, 집에 들어섰다. 하인들에게 식구들을 깨우지 말라 이르고 서재로 들어갔다. 식구들이 일어날 시간까지, 나는 그 방에서 혼자 기다렸다.

육 년 전, 잉골슈타트로 떠나며 아버지를 껴안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벽난로 위에는 어머니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죽은 아버지의 관 곁에 무릎 꿇은 캐롤라인 보퍼트. 슬픔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얼굴. 그 아래에 윌리엄의 작은 초상이 놓여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눈물이 그제야 터졌다.

에르네스트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내 도착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형. 석 달만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다들 웃고 있었는데. 이제 형이 와도 나눌 게 슬픔밖에 없어."

동생은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래도 형이 왔으니까. 아버지가 조금은 기운을 차리실지도 몰라. 윌리엄은 우리 집의 보물이었으니까."

동생의 눈물을 보고 있자니, 상상으로만 그리던 집안의 비탄이 실물이 되어 덮쳐 왔다. 나는 동생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켰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자, 슬픔에 짓눌려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신다고 했다.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꺼냈을 때, 동생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

"누나가 제일 위로가 필요해. 자기 때문에 윌리엄이 죽었다고 자책만 하니까. 그래도 범인이 밝혀진 뒤로는 조금."

"범인이 밝혀져?"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누가 쫓는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바람을 붙잡는 게 빠르지. 산에서 쏟아지는 급류를 지푸라기로 막는 게 빨라. 내가 봤어. 어젯밤에도 그놈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에르네스트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봤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범인을 알고 나서 다들 더 비참해졌어. 처음엔 아무도 안 믿었어. 엘리자베스 누나는 증거를 다 보고도 지금까지 안 믿어."

동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걸, 누가 믿겠어."

숨이 멎었다.

"유스틴 모리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