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화. 두 통의 편지
눈을 떴을 때,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창을 가리던 나무에서 낙엽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 새순이 돋아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세상은 11월이었다. 창밖은 봄이었다.
몇 달이었다. 신경열이 나를 몇 달 동안 침대에 묶어 두었다.
그 시간 내내 헨리가 곁을 지켰다. 나중에야 들었다. 헨리는 내 병세를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연로한 아버지가 그 먼 길을 올 수도 없거니와,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애태울지 뻔했으니까.
자기보다 나은 간병인은 없다고 믿었고, 내가 회복하리라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한 철을 통째로 내 병상 옆에서 보냈다.
실제로 나는 죽음 문턱까지 갔다. 헨리의 그 끝없는 보살핌이 아니었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그 겨울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앓는 내내,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
내가 생명을 준 그 형체가 눈을 감아도 어른거렸다. 나는 쉬지 않고 그것에 대해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노란 눈이 온다고. 저기 서 있다고. 커튼을 걷어 보라고.
헨리는 처음엔 열에 들뜬 착란으로 여겼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몇 달을 두고 집요하게 반복되자,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이 병의 뿌리에 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묻지 않았다. 헨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회복은 아주 느리게 왔다. 며칠 정신이 맑다가도, 밤이 되면 다시 열이 올랐다. 그때마다 침대 옆 의자에서 헨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겨울, 그 의자가 헨리의 자리였다.
그러다 어느 아침, 창밖의 새순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세상이 다시 반가웠던 첫 순간이었다.
신성한 봄이었다. 계절이 나를 함께 일으켜 세웠다. 가슴에 애정 같은 것이 되살아났고, 우울이 걷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예전처럼 명랑해졌다. 그 치명적인 열정에 사로잡히기 전의 나로, 거의 돌아간 것 같았다.
거의.
"헨리."
목이 메었다.
"자네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해 주나."
"공부하겠다고 와서는 온 겨울을 내 병실에서 보냈어. 이 빚을 어떻게 갚지?"
"빨리 낫게. 그게 갚는 거야."
헨리가 웃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니 하는 말인데, 한 가지 얘기를 꺼내도 되겠나?"
몸이 굳었다.
한 가지 얘기. 그게 뭘까. 설마, 감히 떠올리지도 못하는 그것 얘기인가.
"진정하게."
내 낯빛이 변하는 걸 보고 헨리가 손을 저었다.
"불편하면 안 꺼내겠네."
"다만 자네 아버지와 사촌이, 자네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을 무척 기다리셔. 자네가 얼마나 아팠는지도 모르시니, 소식이 없어 애가 타신 거지."
그게 다인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안도가 이렇게 부끄러운 감정인 줄 그때 알았다.
"당연히 써야지. 내 마음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 거긴데."
"그런 마음이라면, 며칠째 자네를 기다리는 편지가 한 통 있네. 사촌에게서 온 것 같던데."
헨리가 편지를 건넸다. 엘리자베스였다.
봉투를 여는 손이 떨렸다. 잉크 위로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빅터, 많이 아팠다는 걸 알아요. 헨리가 꼬박꼬박 보내 주는 편지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요.」
「큰아버지가 잉골슈타트로 떠나겠다는 걸 몇 번이나 말렸는지 몰라요. 그 연세에 그 먼 길을 어떻게 보내요. 말리면서도, 차라리 내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을 생각했는지.」
「펜을 잡는 것조차 금지라지만, 당신 손으로 쓴 한 줄이면 우리 모두 숨을 쉴 수 있을 거예요.」
「큰아버지는 정정하세요. 당신 얼굴 한번 보는 것만 바라고 계시죠.」
「에르네스트는 벌써 열여섯이에요. 공부는 지긋지긋한 족쇄로 여기고, 산을 타고 호수에서 노를 젓는 데만 열심이랍니다. 외국 군대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인데, 형이 돌아오기 전엔 절대 못 보내요.」
「우리 집에 변한 게 하나 있긴 해요. 유스틴 모리츠를 기억하나요?」
유스틴.
기억하고말고. 그 애가 처음 우리 집 문턱을 넘던 날, 겁먹은 얼굴로 엘리자베스 뒤에 숨던 것까지 기억한다.
「열두 살에 우리 집에 왔죠.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에게 미움받던 아이. 돌아가신 숙모님이 그걸 보다 못해 데려오셨잖아요.」
「유스틴은 세상에서 제일 고마워할 줄 아는 아이였어요. 말로 떠벌린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숙모님을 바라보는 눈이 거의 숭배에 가까웠죠. 말투며 몸짓까지 닮으려 해서, 지금도 가끔 그 애를 보면 숙모님이 떠올라요.」
「숙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들 제 슬픔에 빠져, 밤낮으로 간병했던 유스틴을 챙기지 못했어요. 그 뒤로 그 애의 형제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그게 편애에 대한 천벌이라 믿기 시작했죠. 유스틴을 도로 불러들이고는, 용서를 빌다가도 더 자주 네가 네 동생들을 죽였다고 몰아세웠대요. 그 어머니도 지난겨울 초입에 눈을 감았어요.」
「그래서 유스틴이 우리에게 돌아왔어요. 슬픔이 그 애의 쾌활함을 부드러움으로 바꿔 놓긴 했지만, 여전히 참 영리하고 다정한 아이예요.」
「당신도 그랬잖아요. 기분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유스틴이 한 번 웃어 주면 다 풀린다고. 그만큼 해맑고 꾸밈없는 얼굴이라고.」
그랬다. 그 애의 웃음은 그런 웃음이었다.
「막내 윌리엄 얘기도 해야죠. 당신이 봐야 하는데.」
「또래보다 키가 훌쩍 크고, 웃으면 두 뺨에 보조개가 하나씩 파여요. 파란 눈에 짙은 속눈썹, 곱슬머리. 벌써 다섯 살짜리 꼬마 신부감도 있답니다.」
윌리엄. 내가 집을 떠날 때 품에 안겨 있던 막내가, 벌써 그렇게 컸다니.
「제네바 소식도 좀 전할게요. 맨스필드 댁 예쁜 언니는 영국 신사와 결혼을 앞두고 축하 인사를 받는 중이고, 그 동생은 지난가을 부유한 은행가와 결혼했어요. 당신 학교 친구 루이 마누아르도 곧 결혼한다는 소문이에요.」
「이렇게 쓰다 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는데, 맺으려니 다시 걱정이 밀려오네요. 한 줄이면 돼요, 빅터. 한 단어라도 좋아요. 부디 몸조심하고, 제발, 써 줘요.」
편지를 내려놓았다.
"엘리자베스……."
그날로 책상 앞에 앉아 답장을 썼다. 잘 있다고. 다 나았다고. 곧 간다고.
거짓은 아니었다. 전부는 아닐 뿐.
그 짧은 편지 한 통에 진이 다 빠졌지만, 회복은 그때부터 제 속도를 냈다. 2주 뒤엔 방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몸을 추스르고 처음 한 일은 헨리를 교수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 일이 고문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밤 이후, 나는 자연과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속이 뒤집혔다. 화학 기구가 눈에 띄면 그 밤의 증상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헨리는 그걸 알아채고 내 기구들을 전부 치웠다. 실험실로 쓰던 그 방이 싫어진 것까지 눈치채고, 하숙방도 옮겨 주었다.
하지만 교수들 앞에서는 그 배려도 소용이 없었다.
발트만 교수는 따뜻했다. 내가 과학에서 이룬 놀라운 진보를 진심으로, 다정하게 칭찬했다.
그 다정함이 형벌이었다.
내 낯빛이 어두워지자 교수는 겸손이라 여기고, 나를 끌어내려는 듯 화제를 과학 자체로 돌렸다. 어쩌겠는가. 그는 기쁘게 해 주려 했고, 나를 괴롭혔다. 나를 천천히 처형할 도구들을 눈앞에 하나씩, 정성스레 늘어놓는 것 같았다.
화학의 경이, 앞으로의 연구, 나의 재능. 한 마디 한 마디가 살에 박혔다.
말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그 고통을 내색조차 못 했다. 진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헨리가 나섰다. 자기는 과학엔 문외한이라며 능청스럽게 대화를 딴 데로 돌렸다. 나는 속으로만 백번 감사했다.
크렘페 교수는 더했다. 그 무뚝뚝한 극찬은, 당시의 내 신경엔 발트만 교수의 온화한 칭찬보다 더한 못이었다.
"이런 맹랑한 친구를 봤나! 클레르발 군, 내 장담하는데 이 친구가 우리를 몽땅 앞질렀소. 몇 년 전만 해도 아그리파를 복음처럼 믿던 애송이가 말이오."
교수가 내 낯빛을 흘끗 보더니 껄껄 웃었다.
"어허, 프랑켄슈타인 군은 겸손하기까지 하군. 젊은이는 겸손해야지. 나도 젊을 땐 그랬는데, 그게 참 금방 닳아 없어져서."
교수는 이내 자기 자랑으로 넘어갔다. 그 덕에 화제가 나에게서 떠났으니, 그날 처음으로 고마운 순간이었다.
헨리는 놀란 눈치였다. 그래도 끝내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가 한없이 좋았고,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입 밖에 내는 순간 그 일이 더 깊이 새겨질 것 같아서.
헨리는 동양의 언어들을 공부하러 온 참이었다. 페르시아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 나는 기꺼이 그 곁에 앉았다.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옛 공부는 증오스러웠고, 빈둥거리면 생각이 밀려들었다.
헨리처럼 문법을 파고들진 않았다. 그럴 마음도 없었다. 나는 그저 뜻만 좇아 읽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동방 시인들의 글은 위안이 되었다. 그들의 슬픔은 마음을 쓰다듬었고 기쁨은 마음을 들어 올렸다. 따뜻한 해와 장미의 정원. 그리스 로마의 영웅시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렇게 여름이 갔다.
귀향은 가을 끝으로 잡혔다가, 이런저런 일로 미뤄졌다. 겨울이 오고 눈이 길을 막았다. 결국 이듬해 봄으로 밀렸다.
애가 탔다. 고향과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6년이었다. 잉골슈타트에 온 지 어느새 6년이 흘러 있었다.
그래도 낯선 땅에 헨리를 혼자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겨울은 그럭저럭 즐겁게 흘렀고, 봄은 늦었지만 그만큼 눈부시게 왔다.
5월이 되었다. 출발 날짜를 정해 줄 아버지의 편지를 매일 기다렸다.
그 무렵 헨리가 도보 여행을 제안했다. 오래 살았던 이 고장에 작별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2주를 걸었다.
산 공기와 길 위의 풍경, 그리고 헨리의 이야기가 몸에 남은 마지막 그늘을 걷어 갔다. 언덕을 오르고, 낯선 마을에서 자고, 다음 날 또 걸었다. 헨리는 페르시아 시인들을 흉내 내 이야기를 지어냈고, 내가 좋아하는 시를 외웠고, 나를 논쟁으로 끌어냈다.
연구는 나를 사람들에게서 떼어 놓았었다. 헨리가 그걸 되돌렸다. 자연의 얼굴과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다시 사랑하는 법을, 그가 가르쳐 주었다.
훌륭한 친구여. 그대는 얼마나 진심으로 나를 아꼈던가. 이기적인 몰두로 오그라들었던 마음을, 그대의 다정함이 다시 펴 주었다.
맑은 하늘과 초록 들판이 다시 가슴을 벅차게 했다. 봄꽃이 울타리마다 피었고 여름꽃이 봉오리를 맺었다. 지난 한 해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이, 처음으로 나를 놓아주었다.
일요일 오후, 우리는 학교로 돌아왔다.
광장에서 농부들이 춤을 추었다. 교회 종소리가 울렸고, 마주치는 얼굴마다 밝고 즐거웠다. 나도 날아갈 것 같았다. 고삐 풀린 기쁨이라는 게 있다면 그날의 내 걸음이 그랬다.
그 기분 그대로 하숙 계단을 올랐다.
방에 들어서자, 탁자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기다리던 편지. 날짜를 정해 줄 편지. 드디어 집에 간다.
나는 웃으며 봉인에 손을 얹었다.
그 봉인을 뜯기 전까지가, 내 인생의 마지막 평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