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4화. 첫 숨
새벽 1시였다.
11월의 비가 음산하게 창을 두드렸다. 촛불은 거의 다 타서, 심지 끝의 마지막 불빛이 가늘게 떨었다.
탁자 위에는 그것이 누워 있었다. 며칠 전까지 천에 덮여 있던 윤곽이, 이제는 맨몸으로.
다락은 좁고 추웠다. 나는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
2년이었다. 잠을 버리고 건강을 버리고, 오직 이 밤 하나를 위해 달려온 시간이었다. 뺨은 창백해졌고 몸은 야위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발치에 누운 육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생명의 도구들을 하나하나 곁에 끌어모았다. 죽은 것에 존재의 불꽃 한 점을 흘려 넣는 일. 이제 그 마지막 절차만 남아 있었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초조함이 고통에 가까웠다.
빗소리가 커졌다 잦아들었다 했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숨을 골랐다. 손끝이 떨렸지만, 멈춘다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지금이다.
불꽃이 흘러들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없었다. 빗소리뿐이었다.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정적이었다.
나는 꺼져 가는 촛불 빛에 의지해 그 얼굴을 지켜보았다. 심장이 관자놀이에서 뛰었다.
그때였다.
흐린 노란 눈이 떠졌다.
그것이 숨을 쉬었다. 가쁘게, 힘겹게. 가슴이 오르내렸다.
경련이 사지를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살아났다.
그 순간의 심정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무한한 공을 들여 빚은 존재가 처음 숨 쉬는 순간을, 무슨 말로 옮겨야 할까.
나는 그 몸의 부위 하나하나를 아름답다고 골랐다. 정말이다. 아름다운 것만 골라 모았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내렸다. 이는 진주처럼 희었다. 사지의 비율은 자로 잰 듯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노란 피부가 그 아래의 근육과 혈관을 겨우 덮었다. 속이 비쳐 보일 만큼 얇게. 물기 어린 흐릿한 눈은 그것이 박힌 잿빛 눈구멍과 거의 같은 색이었다.
낯빛은 쭈글쭈글했다. 검은 입술은 일자로 굳어 있었다.
하나하나는 아름다웠다. 그것들이 한 얼굴에 모이자,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되었다.
아름답게 고른 것들이라, 더 끔찍했다.
숨이 멎었다. 절제를 잊을 만큼 뜨겁게 바랐던 일이었다. 2년 동안 심장을 데우던 꿈이었다. 그 꿈이 완성되는 바로 그 순간에, 뒤집혔다.
가슴을 채운 것은 벅참이 아니었다. 숨 막히는 공포와 구역질이었다.
저것을 내가 만들었다.
나는 방을 뛰쳐나왔다.
침실로 도망쳐 한참을 서성였다. 잠은 오지 않았다. 방금 본 것이 눈꺼풀 안쪽에 박혀 있었다.
이윽고 탈진이 이겼다.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몇 분이라도, 단 몇 분이라도 잊고 싶었다.
잠은 왔다. 눈꺼풀이 돌덩이처럼 내려앉았고,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끌려 들어갔다.
대신 꿈이 왔다.
엘리자베스였다. 잉골슈타트의 거리를 걷는 모습이 보였다. 뺨에 혈색이 돌았다. 건강했고, 아름다웠다.
나는 반가움과 놀라움에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운 얼굴이었다.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시체의 빛으로 변했다.
이목구비가 뭉개지듯 일그러졌다. 품 안에 안긴 것은 어머니의 시신이었다.
수의가 그 몸을 감쌌다. 플란넬 주름 사이로 구더기가 기어 다녔다.
비명과 함께 깨어났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사지가 제멋대로 뒤틀렸다.
그때, 덧문 틈을 비집고 든 흐리고 누런 달빛 속에서 나는 보았다.
그것이 서 있었다.
침대 커튼을 들어 올린 채. 그 눈이, 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게 박혀 있었다.
턱이 벌어졌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웃음 같은 것이 뺨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았다. 한 손이 이쪽으로 뻗어 왔다. 붙잡으려는 듯이.
나는 몸을 던지듯 방을 빠져나와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하숙집 안뜰이었다. 거기서 밤을 새웠다.
서성이고, 또 서성였다. 걸음을 멈추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다.
귀가 온 신경을 곤두세워 모든 소리를 낚아챘다. 발소리인가. 문 여는 소리인가. 내가 그토록 비참하게 생명을 준 그 시체가, 이리로 오는 소리인가.
빗줄기 하나, 바람 한 번에도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11월의 밤비가 옷을 적셨다.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추위를 느낄 자리까지 공포가 들어차 있었다.
아, 그 얼굴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되살아난 미라도 그만큼 흉하지는 않으리라.
만들다 만 것을 볼 때도 흉하긴 했다. 하지만 그 근육과 관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것은 단테도 상상하지 못했을 무엇이 되었다.
맥박이 미친 듯 뛰었다. 혈관 하나하나가 두근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 다음 순간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 와중에 쓰디쓴 실망이 배어들었다. 그 오랜 세월 내 양식이었고 내 단잠이었던 꿈이, 하룻밤 사이에 지옥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완전히.
밤은 길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같은 자리를 돌고 또 돌았다.
하늘은 밝아질 기미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 밤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젖은 돌바닥 위로 내 발소리만 반복해서 울렸다. 그 소리마저 무서워서, 가끔은 숨을 죽이고 멈춰 섰다.
아침이 왔다. 음산하고 축축한 아침이.
잠 못 잔 눈에 잉골슈타트 교회의 흰 첨탑이 들어왔다. 시계가 6시를 가리켰다. 문지기가 안뜰 문을 열었고, 나는 거리로 쏟아지듯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저 골목에서 그것이 나타나면. 다음 모퉁이에서 마주치면.
감히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무서운 것이 등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고 믿는 사람은, 한번 돌아본 뒤로는 다시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내가 꼭 그랬다.
검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뼛속까지 젖었지만 하숙으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 방에는, 어쩌면 아직 그것이 있었다.
그저 걸었다. 몸을 혹사하면 마음을 짓누르는 짐이 조금은 덜어질까 해서.
그러다 여관 앞에 이르렀다. 역마차와 마차 들이 서고 떠나는 곳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왜 멈췄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거리 저편에서 마차 한 대가 다가왔다.
스위스에서 오는 역마차였다.
마차가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렸다.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자마자 튀어나오듯 뛰어내렸다.
헨리 클레르발.
"프랑켄슈타인!"
헨리가 두 팔을 벌렸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내리자마자 자네가 딱 서 있다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그 순간만큼은 공포가 물러났다.
헨리의 얼굴에 아버지가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고향의 정든 장면들이 전부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움켜쥐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고요하고 맑은 기쁨 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대학 쪽으로 걸었다. 헨리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고향 친구들 소식, 제네바의 근황,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 목소리가 강물처럼 흘렀다. 나는 그 강물에 잠시 지난밤을 담가 두었다.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얼마나 진을 뺐는지 자네는 모를 거야. 세상에 필요한 지식은 장부 정리로 끝난다고 믿는 분이니까. 뭐라고 하시는 줄 아나?"
헨리가 제 아버지 흉내를 내며 목소리를 깔았다.
"나는 그리스어 몰라도 1년에 만 플로린을 벌고, 그리스어 몰라도 밥만 잘 먹는다."
웃음이 나왔다. 지난밤 이후 처음 웃는 웃음이었다.
"끝까지 못 미더워하셨지. 그래도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더군. 지식의 땅으로 떠나는 항해를 허락하셨네."
"자네를 보니 정말 기뻐. 그래, 아버지는? 동생들은, 엘리자베스는 잘 지내?"
"다들 잘 지내. 아주 잘. 다만 자네 편지가 너무 뜸해서 걱정이 많아. 그 얘긴 내가 대신 잔소리 좀 해야겠는데."
헨리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자네, 안색이 왜 이런가? 이렇게 마르고 창백해서야. 꼭 며칠 밤을 꼬박 새운 사람 같아."
"맞아. 요즘 한 가지 일에 너무 깊이 매달려서 쉬질 못했어. 하지만 이제 끝났어."
끝났기를 바랐다. 이제는 자유이기를.
온몸이 떨렸다. 지난밤의 일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입에 올리는 건 더더욱.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헨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꾸며 내면서.
하숙 건물이 보이자, 그제야 그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것이 아직 방에 있을지 모른다. 살아서. 걸어 다니면서.
그것과 마주치는 것도 끔찍했다. 하지만 헨리가 그것을 보는 것은, 천 배는 더 끔찍했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계단 아래서 기다려 주게. 금방 내려올 테니."
헨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방문 앞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이 이미 손잡이에 얹혀 있었다. 손이 그대로 멎었다.
문 너머에 있으면. 그 노란 눈이 문 열리기를 기다리며 이쪽을 향해 있으면.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나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문 뒤에 유령이 기다린다고 믿는 아이가 그러듯이.
아무것도 없었다.
떨리는 발로 들어섰다. 거실이 비어 있었다.
침실 문을 열었다. 커튼 뒤를 확인했다. 침대 밑까지 들여다보았다.
없었다. 그 끔찍한 손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 방을 두 번, 세 번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손뼉이 절로 쳐졌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발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사라졌다. 그것이 사라졌다.
계단 중간에서, 발이 멈췄다.
사라졌다는 건 이 방에 없다는 것.
이 방에 없다는 건, 세상 어딘가에 풀려났다는 뜻이었다.
그 생각을 삼킨 채, 나는 헨리를 데리고 올라왔다.
하인이 아침상을 들여왔다. 나는 자리에 앉지 못했다. 한자리에 잠시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살갗이 온통 곤두섰다. 맥박이 날뛰었다. 기쁨이라기엔 너무 날카로운 무언가가 온몸을 휘저었다.
나는 의자를 뛰어넘었다. 손뼉을 쳤다. 소리 내어 웃었다.
헨리는 처음엔 그저 재회가 반가워 그러는 줄 알았으리라. 하지만 내 눈을 들여다본 순간, 그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거기엔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있었을 테니까. 그칠 줄 모르는, 텅 빈 웃음소리가.
"빅터."
헨리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대체 왜 이러나? 제발 그렇게 웃지 말게."
"자네 지금 병이 났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묻지 말게."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데도 보였다. 그 형체가, 스르르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이.
"저것이 말해 줄 거야. 아, 살려 주게. 살려 줘!"
그것이 나를 붙잡았다. 붙잡았다고, 그 순간엔 믿었다.
나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헨리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리고 바닥으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