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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4화 · [1부] 3화. 다락방

[1부] 3화. 다락방

"그런 쓰레기로 십 년을 보냈다고?"

잉골슈타트에서 받은 첫 평가였다.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고 다짐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도착 다음 날 아침, 나는 소개장을 들고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첫 방문지가 자연철학 교수 크렘페의 방이었다. 땅딸막한 몸, 걸걸한 목소리, 인상만으로 사람을 물리치는 얼굴.

그는 내가 그동안 뭘 공부했는지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답했다. 아그리파, 파라켈수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펜을 굴리던 손이 멈췄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 헛소리들을 정말로 팠다고?"

"……네."

"자네가 거기 쏟은 시간은 일 분 일 초까지 전부 버린 거야. 천 년 묵은 곰팡내 나는 이름들로 머리를 채웠어. 대체 어느 사막에서 살다 왔길래 아무도 그걸 안 알려 줬나?"

그는 혀를 차며 새로 읽을 책 목록을 갈겨써 줬다. 다음 주부터 자기가 자연철학 강의를 열고, 격일로 발트만 교수가 화학을 맡는다는 말과 함께.

나는 목록을 쥐고 방을 나왔다. 귀가 뜨거웠다.

이상한 건, 그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옛 스승들은 나도 이미 폐위시켰다. 참나무가 리본으로 찢기던 그 밤에. 크렘페는 죽은 왕들을 다시 죽였을 뿐이다.

정작 나를 식히는 건 그가 모시는 새 왕들이었다. 옛 학문은 허황했을지언정 꿈의 크기가 달랐다. 불멸. 권능.

그걸 내려놓고 받는 게 고작 이름 붙이기와 분류라면,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거대한 거짓과 자잘한 진실. 저울은 자꾸 거짓 쪽으로 기울었다.

며칠을 그렇게 겉돌았다. 낯선 도시를 익히고, 하숙을 정리하면서. 크렘페의 강의는 갈 마음이 없었다. 그 잘난 얼굴을 강단에서까지 봐 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발트만의 화학 강의에 들어간 건 절반은 호기심, 절반은 심심함이었다.

그 심심함이 내 인생을 갈랐다.

발트만은 쉰 줄의 남자였다. 관자놀이에만 희끗한 서리가 앉았고, 키는 작아도 자세가 곧았다. 그리고 목소리. 그렇게 듣기 좋은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는 화학이 걸어온 길을 짚은 뒤, 강의 끝에 이렇게 말했다.

"이 학문의 옛 스승들은 불가능을 약속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근대의 대가들은 반대예요. 약속은 초라할 만큼 적게 합니다. 금은 만들 수 없고, 불로장생의 영약 따위는 없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데 보십시오. 흙이나 만지게 생긴 이 손으로, 현미경이나 들여다보는 이 눈으로, 이들은 기적을 해냈습니다. 자연의 은신처까지 파고들어 그 작동을 들춰냈어요. 하늘에 올라갔고, 피가 도는 길을 밝혔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이들은 새롭고 거의 무한한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하늘의 천둥을 부리고, 지진을 흉내 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 세계의 그림자로 조롱합니다."

그 강의가 내 사형 선고문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안의 건반을 차례로 눌렀다. 화음이 쌓였고, 강의가 끝났을 때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해냈다면, 나는 더 간다.

이미 난 길을 밟고 올라가서, 아무도 내지 않은 길을 새로 낸다. 미지의 힘을 파헤치고, 창조의 가장 깊은 비밀을 세상 앞에 펼쳐 보인다.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속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 간밤의 소용돌이는 하나의 목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로 발트만을 찾아갔다.

집에서 만난 그는 강단에서보다 부드러웠다. 나는 크렘페에게 했던 고백을 그대로 반복했다. 아그리파. 파라켈수스.

그는 웃었다. 다만 크렘페의 웃음과는 종류가 다른 웃음이었다.

"그분들의 집념이 근대 학문의 주춧돌 대부분을 놓았지요. 우리는 그 위에서 이름을 새로 붙이고 정리했을 뿐입니다. 천재의 노력은 방향이 틀렸어도, 돌고 돌아 결국 인류의 자산이 됩니다."

경멸이 한 톨도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의 제자가 되기로 그 자리에서 정했다.

"화학은 자연철학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분야입니다. 하지만 화학만 파면 옹졸한 실험쟁이가 될 뿐이에요. 진짜 과학자가 되려거든 수학까지, 전 분야를 가져가세요."

그는 실험실로 데려가 기계들의 쓰임을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책 목록을 적어 줬고, 내가 더 성장하면 자기 기계를 쓰게 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그 하루가 내 남은 인생을 결정했다.

그날부터 내 세상에는 자연철학, 그중에서도 화학만 남았다.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살았다. 실험대 앞에서 고개를 들면 별이 아침 빛에 지워진 뒤이기 일쑤였다.

다른 학문은 앞선 사람들이 가 놓은 데까지 가면 끝이다. 과학은 달랐다. 파도 파도 새 광맥이 나왔다. 그 맛을 본 사람은 삽을 놓지 못한다.

그렇게 파고드는 인간은 빨리 큰다. 학생들이 놀랐고, 나중에는 교수들이 놀랐다.

발트만은 어느새 스승이라기보다 벗이었다. 그는 가장 난해한 대목을 가장 쉬운 말로 풀어 주며 내 길을 골라 줬다.

크렘페마저 심술궂은 웃음으로 안부를 건넸다.

"요즘 아그리파 씨는 잘 지내시나?"

미운 정이었다. 그 퉁명한 얼굴 안에도 단단한 지식이 들어 있었고, 나는 그것까지 빨아들였다.

2년이 그렇게 갔다. 제네바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2년째 되던 해, 화학 기구 몇 가지를 개량했다. 그 일로 대학에 이름이 났다. 교수들에게 더 배울 게 없어졌을 때, 나는 짐을 쌀 생각을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때 그 질문이 나를 붙들었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가.

대담한 질문이었다. 다들 수수께끼로 봉인해 둔 질문. 하지만 비겁함과 게으름만 없다면,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문 앞에 서 있다.

답을 얻으려면 이상한 길로 들어가야 했다. 생명을 알려면, 먼저 죽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해부학을 팠다. 모자랐다. 몸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그 과정을 두 눈으로 봐야 했다.

아버지는 나를 유령 이야기로 겁주지 않고 키우셨다. 어둠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고, 묘지는 생명이 빠져나간 몸들의 보관소일 뿐이었다. 그 겁 없는 기질이 이제 쓸모를 찾았다.

나는 납골당에서 밤을 보냈다. 코를 찌르던 냄새도 며칠이 지나자 무뎌졌다. 아름답던 것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며칠이고 지켜봤다. 생기가 돌던 뺨을 부패가 이어받고, 눈과 뇌의 경이를 벌레가 물려받는 것을.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그 인과의 사슬을 고리 하나하나까지, 거꾸로 짚고 또 짚었다. 몇 달을 그 어둠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그 어둠 한복판에서, 빛이 터졌다.

눈부시게 밝은데, 어이없을 만큼 단순한 빛. 열어젖혀진 전망이 너무 거대해서 현기증이 났다. 같은 과학에 평생을 건 그 수많은 천재 중에 하필 나 혼자 이 비밀 앞에 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미치광이의 환영이 아니다. 나는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어디에도 비약은 없었다.

며칠 밤낮을 갈아 넣은 끝에 결론은 바위처럼 굳었다.

나는 생명의 원인을 알아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생명 없는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그 방법은 나와 함께 죽는다.

손안의 힘이 너무 컸다.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생명을 주는 것과, 생명을 담을 그릇을 짓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신경과 근육과 혈관이 얽히고설킨 몸. 그걸 만드는 일은 여전히 상상을 넘는 난제였다.

처음엔 저울질했다. 인간이냐, 더 단순한 생물이냐.

하지만 첫 성공에 달아오른 상상력은 의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처럼 복잡하고 경이로운 존재. 그 아래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문제는 재료였다. 사람 몸의 부속은 지독하게 작고 세밀하다. 그 세공이 속도를 잡아먹었다.

실패할 각오는 했다. 작업은 수없이 어그러질 테고, 결과물이 불완전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과학과 기술은 날마다 자란다. 내 시도가 완성에 못 미쳐도, 다음 성공의 주춧돌은 된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건 속도였다.

그래서 정했다. 크게 만든다.

키 8피트. 거기에 비례하는 어깨와 팔다리.

순전히 작업 편의였다. 부속이 클수록 손이 빨라지니까.

재료를 모으고 고르는 몇 달 동안, 나는 자주 꿈에 취했다.

삶과 죽음은 경계선일 뿐이다. 내가 제일 먼저 그 선을 부수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쏟아붓는다.

새로운 종이 태어난다. 그들은 나를 창조주로, 근원으로 축복한다. 수많은 행복하고 빼어난 존재가 내게 제 존재를 빚진다. 어떤 아버지도 자식에게 이만한 감사를 받을 자격은 없다.

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죽음이 이미 데려간 몸도, 언젠가는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감긴 눈이, 다시 떠지는 상상.

그 대목에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꿈속에서만 굴렸다.

꿈은 달콤했다. 재료를 구하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해부실과 도살장이 내 조달처가 됐다. 무덤가의 축축한 어둠을 뒤졌고, 납골당에서 뼈를 모았다. 사람의 몸을 부속으로 다루다 보면 이따금 손이 멈췄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그럴 때마다 나는 목표를 더 크게 켰다. 완성만 하면, 전부 정당해진다.

하숙집 꼭대기, 복도와 계단으로 다른 방들과 뚝 떨어진 다락방이 내 공방이 됐다. 공방이라기엔, 더러운 창조의 작업장이었다.

눈알이 빠질 듯한 세공의 나날이었다. 그해 여름이 유난히 아름다웠다는 얘기는 나중에 들었다. 들판이 몇십 년 만의 풍년이었다는 것도. 내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계절만 놓친 게 아니었다. 가족을 잊었다. 편지가 쌓였고, 침묵이 길어질수록 답장은 더 무거워졌다.

아버지가 언젠가 하신 말씀이 있었다.

"네 소식이 끊기면, 나는 네가 다른 의무들도 잊었다는 뜻으로 읽으마."

맞는 말씀이었다. 나도 알았다. 그런데도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애정이든 죄책감이든, 전부 완성 다음으로 미뤘다. 이 일이 끝나면 몰아서 갚겠다고.

가을이 왔다. 잎이 지는 것도 창문 너머의 소문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사람 꼴이 아니었다. 뺨이 꺼졌고, 몸은 야위었고, 밤마다 미열이 올랐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도 소스라쳤다. 죄지은 사람처럼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거울 속의 폐허에 스스로 놀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곧 끝난다. 끝나면 쉰다.

그 두 문장이 나를 지탱했다.

달만이 내 밤샘을 지켜봤다.

아버지의 편지가 온 건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이번에는 질책이 없었다. 내 근황을 전보다 자세히 물으실 뿐이었다. 그 점잖음이 오히려 아팠다.

나는 답장을 미뤘다. 펜 대신 연장을 들고, 다락으로 올라가 문을 닫았다.

달빛이 창으로 들어와 탁자 위를 비췄다.

천에 덮인 윤곽. 사람의 형상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그것은 거의 다 만들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