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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3화 · [1부] 2화. 벼락

[1부] 2화. 벼락

질병을 없애겠다. 죽음을 몰아내겠다.

열세 살의 계획이었다.

시작은 그 여관의 낡은 책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아그리파의 전집을 사 모았다. 파라켈수스가 뒤를 이었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가 그 뒤를 이었다. 전부 아버지 몰래였다.

쓰레기라고 하셨으니까.

딱 거기까지였다. 왜 쓰레기인지, 무엇이 그 낡은 학문을 밀어냈는지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한 번만 설명해 주셨더라면. 아그리파의 시대는 끝났고 지금은 더 강한 학문이 그 자리에 섰다고, 그 한마디만 해 주셨더라면 나는 순순히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표지를 흘끗 보셨을 뿐이고, 나는 계속 읽었다.

책 속에서 옛 스승들은 무엇이든 약속했다. 현자의 돌. 불로장생의 영약.

금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돈은 시시했다.

내가 원한 건 영광이었다.

인간의 몸에서 병이란 병을 전부 몰아내는 것. 칼이나 총만 아니면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걸 해낸 사람의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열세 살짜리는 밤마다 그 이름 자리에 제 이름을 넣어 보다가 잠들었다.

남들은 모르는 보물을 나 혼자 캐는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은 답답했다. 요즘 학자들은 이름 붙이고 분류하는 데만 바빴다. 자연의 심장을 열어 보겠다는 사람은 옛날 책 속에만 있었다.

뉴턴조차 자신을 진리의 바다 앞에서 조개껍데기나 줍는 아이에 비유했다지 않은가.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바다가 아직 통째로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들판의 농부는 바람과 비를 안다. 학자는 거기에 이름을 붙일 줄 안다. 그게 전부다. 자연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는 둘 다 모른다.

자연이라는 성채. 다들 그 성벽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유령을 불러내는 주문도 있었다. 나는 책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시키는 시간에, 시키는 자리에서, 촛불까지 시키는 개수대로 밝히고, 시키는 말을 외웠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서툰 탓이다. 발음이 틀렸거나, 준비물이 모자랐거나.

스승은 틀리지 않는다. 틀리는 건 언제나 제자다.

그 소년에게는 의심이라는 기관이 아예 없었다.

열다섯 살 되던 해였다.

벨리브의 집에 머물 때, 유라 산맥 뒤에서 뇌우가 넘어왔다. 천둥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터졌다. 유리창이 떨고, 집 전체가 울렸다.

다들 안으로 피했다. 나는 문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속에서 빛이 그물처럼 갈라지고, 그때마다 산맥의 윤곽이 한순간씩 드러났다.

무서웠냐고? 아니. 심장이 뛰긴 했는데, 무서움과는 다른 박자였다. 나는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스무 걸음쯤 떨어진 늙은 참나무에 불기둥이 꽂혔다.

세상이 하얗게 지워질 만큼 번쩍였다. 빛이 걷혔을 때, 나무가 없었다. 몇백 년을 그 자리에 서 있던 거목이, 한순간에.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그루터기를 보러 갔다. 나무는 쪼개진 게 아니었다. 리본처럼, 얇고 긴 띠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 살면서 그토록 완벽하게 파괴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침 그날 집에는 자연철학을 깊이 연구한 손님이 와 있었다. 그는 그루터기 앞에 쪼그려 앉더니 눈을 빛냈다.

"번개는 하늘의 변덕이 아닙니다. 전기라는 힘이지요."

"전기…… 라고요?"

"죽은 개구리 다리에 금속을 대면 근육이 움찔합니다. 갈바니라는 학자가 보여 줬지요. 번개와 생명이 같은 힘의 두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죽은 것이 움직인다. 하늘을 찢는 힘과 같은 이유로.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내 스승들이 전부 폐위됐다. 아그리파도, 파라켈수스도,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도. 그들이 약속한 기적은 동화였다.

진짜 힘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언어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 새로운 힘으로 갈아타는 대신, 전부에게서 손을 놓아 버렸다.

어차피 인간은 아무것도 끝까지 알 수 없다.

소년다운 변덕이었다. 그토록 나를 사로잡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시시해졌다. 유령도 영약도, 개구리 다리도.

나는 수학으로 도망쳤다. 숫자는 단단했다. 무너지지 않는 기초 위에 서 있었고,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졌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밤에 꿈 없이 잤다.

그 고요가 내 수호천사의 마지막 손길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파멸은 이미 별자리 어딘가에 걸려 있었고, 천사는 그걸 밀어내려고 마지막 힘을 다했다는 걸.

천사는 졌다. 운명이 더 셌다.

열일곱이 되자 아버지가 유학 이야기를 꺼내셨다.

"제네바 학교만 다녀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의 풍습도 배워야지."

잉골슈타트 대학.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출발 날짜까지 잡혔다.

그리고 그 날짜가 오기 전에, 내 인생의 첫 번째 불행이 찾아왔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경고였다. 앞으로 닥칠 일들의 첫 번째 문장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성홍열에 걸렸다.

심하게 앓았다. 며칠 만에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이 나왔다.

어머니는 당신이 간호하겠다고 나섰고, 우리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옮는 병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엔 물러서셨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고비라는 말이 나온 밤, 어머니는 더 버티지 못하셨다.

"내 딸이 죽어 가는데 문밖에 서 있으라고?"

그날부터 어머니가 병상을 지키셨다. 밤낮없이. 그리고 그 손길이 병을 이겼다. 엘리자베스는 열이 내렸고, 눈을 떴고, 살아났다.

사흘 뒤, 이번에는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같은 열병이었다. 훨씬 사나운 얼굴을 하고서.

이번에는 우리가 병상을 지켰다. 엘리자베스는 아직 제 몸도 못 가누면서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물수건을 갈며 빌었다. 누구에게 비는지도 모르면서.

소용없었다. 의사들의 표정이 말보다 먼저 알려 줬다. 그들은 서로 눈을 피했고,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복도에서 그 낮은 웅얼거림을 들으며 벽을 짚었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어머니였다. 임종 자리에서 엘리자베스와 내 손을 끌어다가, 당신의 손 아래 포개셨다.

"얘들아. 너희 둘이 맺어지는 걸 보는 게 내 가장 큰 소망이었단다. 이제 그 소망은 너희 아버지의 위안이 되겠지."

숨이 자꾸 끊겼다. 그래도 어머니는 말을 이으셨다.

"엘리자베스. 내 자리를 네가 대신해 다오. 동생들을 부탁한다."

그리고 조금 웃으셨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 놓고…… 너희를 두고 가려니, 그게 아깝구나."

어머니는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다. 감긴 얼굴에도 애정이 남아 있었다.

매일 보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다. 그 문장을 머리가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 눈이 다시는 떠지지 않는다는 것.

처음 며칠의 슬픔은 실감이 아니다. 시간이 부재를 증명하고 나서야 진짜 쓴맛이 온다.

돌이킬 수 없다.

나는 그 말의 뜻을 그때 처음 배웠다. 세상에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똑똑해도.

그 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은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흘렀다. 슬픔이 의무에서 사치로 바뀌는 날이 왔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밥을 먹고,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어느 순간부터는 입가에 웃음도 돌아왔다.

그 웃음이 죄스러웠다. 그래도 웃었다. 산 사람은 그렇게 산다.

집이 무너지지 않은 건 엘리자베스 덕이었다.

그 애는 자기 슬픔을 접어서 어디 깊은 곳에 넣어 버렸다. 울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앞에서 울지 않았다.

병에서 갓 일어난 몸으로 집안을 떠맡았다. 동생들을 챙기고, 아버지를 위로하고, 식탁에 다시 웃음소리가 돌게 했다. 어머니가 하시던 그대로.

우리를 웃게 하려고 자기 슬픔을 잊는 사람. 그 미소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서, 나는 차마 오래 마주 보지 못했다.

미뤄졌던 출발이 다시 잡혔다. 나는 아버지께 몇 주만 더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초상집의 고요를 두고 세상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게 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몇 주는 금방 갔다.

떠나기 전날 저녁, 클레르발이 왔다. 같이 유학을 보내 달라고 자기 아버지를 몇 달이나 졸랐다고 했다. 소용없었다.

"장부 정리하는 데 무슨 학문이 필요하냐는 분이라."

헨리는 웃으며 말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상인의 아들은 상인이 되어야 했다.

그 애는 그날따라 말수가 적었다. 대신 이따금 번뜩이는 눈빛에 다 적혀 있었다. 나는 장부 뒤에서 늙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는 나간다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누구도 작별이라는 단어를 먼저 입에 올리지 못했다. 결국 그 말이 나왔고, 우리는 잠을 핑계로 흩어졌다. 서로 속은 척하면서.

새벽에 내려가 보니 다들 마차 앞에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안고 축복하셨다. 클레르발은 내 손을 오래 쥐었다.

엘리자베스는 내 외투 깃을 여며 주고, 마차에 실린 짐을 한 번 더 살폈다. 그러고는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편지 써. 자주. 짧아도 되니까."

"쓸게. 약속해."

마차가 움직였다. 바퀴가 자갈길을 덜컹이며 굴렀다.

나는 태어나서 줄곧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다. 그 사람들이 창밖으로 멀어졌다. 이제부터는 친구도, 내 편도, 전부 스스로 구해야 한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도시에서.

나는 원래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사람을 넓게 사귀는 대신 몇에게만 깊이 붙었다. 아버지, 동생들, 엘리자베스, 클레르발. 그 울타리 밖의 얼굴들 앞에서는 늘 말이 굳었다.

그런 내가 낯선 얼굴만 가득한 도시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길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음이 가라앉는 대신 떠올랐다.

지식. 새로운 세계.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집이라는 울타리가 좁다고 느낀 게 한두 번이었나. 세상으로 나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그토록 바라지 않았나. 지금이 바로 그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여정은 길었다. 마을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창밖의 산세가 바뀌었다. 몸은 녹초가 됐는데 머릿속은 갈수록 맑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하얀 첨탑이 보였다.

잉골슈타트.

숙소까지 안내를 받았다. 방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풀지 않은 짐 가방 하나. 낯선 침대. 촛불 하나가 낯선 벽에 내 그림자를 흔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창밖에서 낯선 도시가 어두워졌다. 어머니가 없다. 엘리자베스도, 클레르발도 없다.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나는 그 구멍을 야심으로 틀어막았다.

두고 봐라. 이 도시가 내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 테니.

그 다짐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 도시에서, 나는 그 일을 저지르게 된다.

아직은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그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