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프랑켄슈타인

10화 · [2부] 1화. 빛과 어둠

[2부] 1화. 빛과 어둠

빙하 틈으로 바람이 들이쳤다.

빅터, 네가 정말 끝까지 들으려 한다면, 나는 처음부터 말하겠다. 저주도 죽음도, 그다음에 해라.

눈을 떴을 때, 나는 아무것도 구별하지 못했다.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냄새와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것들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냄새 맡는 것, 그 모든 게 하나로 뒤엉켜 나를 덮쳤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세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강한 빛이 신경을 찔렀다. 눈을 감았다.

감으면 어둠이 왔다. 뜨면 다시 빛이 쏟아졌다. 그 둘 사이를 오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뜬 채로 견딜 수 있었다.

머리 위로 끝없이 펼쳐진 무언가가 보였다. 빛이 쏟아지는 둥근 지붕 같았다.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걸었다. 어딘가로 내려갔다. 전에는 사방이 막혀 있어 손을 뻗어도 딱딱한 것에 부딪히기만 했는데, 이제는 걸리는 것 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 자유가 낯설었다.

빛이 점점 무거워졌다. 몸이 뜨거웠다. 걸을수록 숨이 가빠왔다.

그늘을 찾아 무작정 걸었다.

숲이었다. 잉골슈타트 외곽의 숲. 축축한 흙냄새와 나뭇잎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머리 위로 가지들이 서로 겹쳐 그늘을 만들었다.

개울가에 이르러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 지친 몸을 뉘었다.

허기와 갈증이 찾아온 건 그 직후였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 땅에 떨어진 열매를 손에 잡히는 대로 주워 먹었다. 개울에 얼굴을 박고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쓰러지듯 잠들었다.

깨어나니 어두웠다. 추웠다. 두려웠다.

몸에 두른 옷가지만으로는 밤이슬을 막을 수 없었다.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도 몰랐다. 그저 사방에서 밀려드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울었다.

그때 하늘 저편에서 부드러운 빛 하나가 떠올랐다.

나무 사이로 둥근 형체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나는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느낀 기쁨이었다.

훗날에야 그것이 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밤엔 그저 빛이었고,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밤마다 그것을 기다렸다. 떠오르면 마음이 놓였고, 기울면 불안했다. 나에게 곁을 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다시 열매를 찾아 나섰다. 나무 아래서 커다란 외투 하나를 발견하고 몸에 둘렀다. 온기랄 것도 없는 천 조각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생각이랄 것이 없었다. 빛과 허기와 갈증과 어둠, 그것들이 뒤엉켜 있을 뿐이었다. 사방에서 소리가 울리고 냄새가 스쳤다.

구별할 수 있는 건 오직 저 밝은 달뿐이었다. 나는 매일 밤 그것만을 눈으로 좇았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을 걸어오는 이도, 이름을 불러주는 이도 없었다. 그저 빛과 어둠, 나무와 개울, 그리고 나 하나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달이 조금씩 야위어갔다.

그 무렵부터 감각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목을 축여주는 맑은 개울이 보였다. 그늘을 드리우는 나뭇잎이 보였다. 뒤엉켜 있던 세계가 조금씩 갈라져, 저마다의 이름 없는 자리를 잡아갔다.

어느 날은 귀에 익은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냈다.

나무 위, 작은 날개 달린 것들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것들은 종종 눈앞의 빛을 가로막곤 했다. 소리는 고왔고,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나도 따라 해보고 싶었다.

목에서 나온 건 새의 노래가 아니었다. 거칠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짐승의 울음도 사람의 말도 아닌 것이었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랐다.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는 오래도록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떤 소리를 내도 새의 노래를 닮지 않았다. 결국 흉내 내기를 그만두었다.

또 며칠이 지나 달이 사라졌다가 야윈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감각은 더 또렷해졌다.

빛에 눈이 익었다. 벌레와 풀을 구별했고, 풀과 풀 사이의 차이도 하나씩 알아갔다. 참새 소리는 거칠고 투박했지만, 검은새와 개똥지빠귀의 소리는 곱고 사람을 끌어당겼다.

세상이 하나씩 이름을 얻어갔다. 물론 그 이름들을 안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그때는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 그것 하나만 겨우 알았을 뿐이었다.

어느 추운 날, 떠돌이들이 버리고 간 불씨를 발견했다.

따뜻함에 넋을 잃었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 온기를 오래 쬐었다. 기쁨에 겨워 손을 불 속에 밀어 넣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도로 빼냈다.

같은 것이 기쁨과 고통을 함께 준다니.

이상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손끝이 얼얼했지만 그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불을 이루는 재료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나뭇가지였다.

가지를 주워 던졌지만 젖어 있어 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으로 앉아 불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불 곁에 놓아둔 젖은 가지가 마르더니, 스스로 타올랐다.

그것을 눈여겨보았다. 가지를 이리저리 건드려보며 이유를 알아냈다. 젖은 것과 마른 것, 그 차이가 관건이었다.

마른 가지를 잔뜩 모아 쌓기 시작했다. 손끝이 그을려도 멈추지 않았다.

밤이 오고 잠이 밀려왔다. 불이 꺼질까 겁이 났다.

마른 나무와 잎으로 조심스레 덮고, 그 위에 젖은 가지를 얹었다. 외투를 펴고 땅에 누워 잠들었다. 자면서도 자꾸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침에 깨자마자 불부터 살폈다.

덮개를 걷으니 바람이 불씨를 살려 불꽃을 피워냈다. 나뭇가지를 엮어 부채도 만들었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데 요긴했다. 이제는 불을 다스릴 줄 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밤이 다시 오자 불이 빛과 열을 함께 준다는 걸 알았다. 어둠이 와도 세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여행자들이 버린 찌꺼기 중에 구워진 것이 있었는데, 열매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먹을거리를 불에 얹어보았다. 열매는 도리어 망가졌지만, 견과와 뿌리는 맛이 살아났다. 무엇이 불에 맞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 하나씩 시험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먹을 것이 줄어갔다. 도토리 몇 알을 찾아 하루를 다 쓴 날도 있었다. 배를 곯은 채 잠드는 밤이 늘었다.

이곳을 떠나야 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불이었다. 우연히 얻은 그것을 다시 만들 방법을 몰랐다.

돌과 돌을 부딪쳐도 보고, 마른 가지를 서로 비벼도 보았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외투를 여민 채 해가 지는 쪽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사흘을 걸어 마침내 탁 트인 들판에 닿았다.

숲을 벗어나는 사흘 내내 배가 고팠다. 나무 그늘도, 열매도 점점 줄었다. 다리가 무거워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아무 데나 몸을 웅크리고 눈을 붙였다가 해가 뜨면 다시 걸었다.

간밤에 큰 눈이 내려 사방이 온통 하얬다. 발이 시렸다. 그것이 눈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아직은 알지 못했다. 이런 흰 것이 세상을 덮은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른 아침, 작은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양치기가 지었을 법한 작은 집이었다.

처음 보는 구조물이었다. 저 안에 나 같은 존재가 아닌, 나를 반겨줄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과 기대를 함께 안고 다가갔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는 노인 하나가 불가에 앉아 아침을 짓다가, 인기척에 돌아보았다.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오두막을 뛰쳐나갔다. 쇠약한 몸 어디서 그런 속도가 나오는지,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의 차림도, 그의 도망침도 낯설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겁먹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반가웠을 뿐인데.

오두막 자체는 반가웠다. 눈도 비도 스미지 않는, 마른 바닥의 집이었다. 지옥 불바다를 지나온 자들에게 궁궐이 그러하듯, 나에게는 이 오두막이 꼭 그러했다. 숲에서 지낸 밤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락함이었다.

노인이 먹다 남긴 빵과 치즈와 우유를 게걸스레 먹었다. 병에 담긴 것도 한 모금 마셔보았지만, 술은 입에 맞지 않아 그대로 남겼다.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세상에 있었다니. 열매나 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친 몸을 짚더미에 눕히자 잠이 몰려왔다.

정오 무렵 깨어났다. 볕이 눈밭을 하얗게 비췄다. 잠시 그 볕을 쬐고 앉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노인의 자루에서 챙긴 빵과 치즈를 들고 몇 시간을 더 걸었다. 해 질 무렵, 마을에 닿았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오두막의 노인 한 사람이 전부는 아닐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인가.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낯설고도 환했다.

오두막과 아담한 집들, 크고 반듯한 저택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뜰마다 자란 채소들, 창가에 놓인 우유와 치즈가 배를 자극했다. 이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창마다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안에 사는 이들은 나 같은 처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중 가장 좋아 보이는 집으로 들어섰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온기와 갓 구운 빵 냄새에 이끌린 걸음이었다.

문턱을 넘기도 전에,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 여자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마을 전체가 들썩였다. 도망치는 사람, 달려드는 사람. 개 짖는 소리, 고함, 아이 울음이 뒤섞였다.

돌이 날아왔다. 몽둥이도,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날아왔다. 어깨에, 등에, 뒤통수에 연달아 맞았다.

몸 곳곳이 찢기고 멍들었다. 어디를 향해 던져지는 건지도, 왜 던져지는 건지도 모른 채 들판으로 내달렸다.

등 뒤로 고함이 따라붙었다.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멈추면 안 된다는 것만은 온몸이 알았다.

낮은 헛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볼품없고 초라한 곳이었다. 조금 전 마을에서 본 궁궐 같은 집들에 비하면 더욱 그러했다.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곳이었다. 허리를 펴면 머리가 닿을 만큼 낮았다. 바닥에는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말라 있었고, 틈새로 바람이 새어 들었다.

헛간 한쪽 벽은 정갈해 보이는 다른 집 한 채와 맞붙어 있었다. 창도 문도 없이 낡은 널판으로 막힌 벽 하나가 이쪽과 저쪽을 갈랐다. 그 집으로는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벽에 등을 붙이고 몸을 웅크렸다. 상처마다 욱신거렸다.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렀는데, 그것이 눈물인지 피인지도 분간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명, 쓰러지던 여자, 날아오던 돌.

양치기 노인도, 마을 사람들도, 나를 보자마자 같은 얼굴을 했다. 공포였다. 인간이라는 것들은 전부 저런 얼굴을 하는 걸까. 단 한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