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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1화 · [프롤로그] 얼음 위의 거인

[프롤로그] 얼음 위의 거인

"넌 동생을 얼음 바다에 묻게 될 거다."

떠나는 날 아침까지, 누나는 그 말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배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얼음 바다 한복판에서 이 편지를 쓴다.

마거릿 누나.

무사하다는 소식이 누나에겐 제일 반갑겠지. 그래, 아직 아무 일도 없다.

순서대로 쓰겠다. 첫 편지를 부친 건 지난겨울, 페테르부르크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누나의 예언이 우스웠다. 재앙은커녕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몸이 가벼워졌다. 뺨을 찢는 찬바람마저 달았다.

사람들은 북극을 죽음의 땅이라 부른다. 나는 한 번도 믿은 적 없다. 내 눈에 그곳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

인간의 발자국이 단 하나도 찍히지 않은, 세상의 마지막 백지.

나침반 바늘을 끌어당기는 저 힘의 정체는 뭘까. 얼음 너머에 새 뱃길이 숨어 있다면. 몇 달씩 걸리던 항해가 몇 주로 줄어든다면.

그 백지에 맨 처음 이름을 적는 사람이 나라면.

상상만으로 심장이 터질 듯했다. 영원한 빛의 땅에서, 인간이 무엇인들 찾아내지 못하겠나.

누나는 기억하겠지. 토머스 삼촌의 서재 말이다. 벽이란 벽을 항해기가 채운 방, 북쪽 바다로 떠나 죽거나 살아 돌아온 사내들의 기록.

그 책들이 낮이고 밤이고 내 학교였다. 나는 갑판을 밟기도 전에 그 방에서 먼저 뱃사람이 됐다.

아버지는 눈을 감으시며 유언을 남기셨다.

"저 아이만은 절대 바다에 보내지 마라."

삼촌은 그 유언을 지키려 애썼다. 유언은 꽤 오래 버텼다. 내가 시인이 되겠다고 설치던 일 년 동안은.

웃어도 된다, 나도 웃으니까. 시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마침 그때 사촌의 유산이 굴러들어 왔다.

그 돈을 세던 밤, 깨달았다.

이제 핑계가 없다.

그날부터 육 년을 바쳤다. 고래잡이배를 탔다. 갑판 위에서 얼고, 굶고, 잠을 버렸다.

낮에는 선원들보다 험하게 일했고, 밤에는 수학과 의술과 항해술을 팠다. 선장이 배의 둘째 자리를 내밀며 남으라고 붙잡았을 때는 솔직히 조금 우쭐했다.

편하게 살 길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재산이 흔드는 어떤 미끼보다 나는 영광이 좋았다.

이만하면 자격이 있지 않을까, 누나.

유월에 출항한다. 성공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실패하면 곧 보게 되겠지, 아니면 영영 못 보거나.

이 편지를 봉하는 지금도 손끝이 떨린다. 두려움 반, 설렘 반.

두 번째 편지는 삼월, 아르한겔스크에서 썼다.

배를 구했다. 선원도 모았다. 겁이라곤 모르는 사내들이다.

일등항해사는 담대하고 명예에 굶주렸다. 다만 그와 나눌 이야기라곤 항로와 바람뿐이다.

꿈이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가까워질수록 가슴 한구석이 자꾸 비었다.

누나, 나는 친구가 없다.

성공하면 같이 기뻐해 줄 사람. 무너지는 날엔 붙잡아 줄 사람. 용감하되 다정하고, 내 눈빛에 눈빛으로 답해 줄 단 한 사람.

이 배 위엔 없다. 스물여덟이나 먹고도 학교 문턱 한번 못 밟아 봤다. 열넷까지는 들판을 쏘다니며 삼촌의 항해기만 읽었고, 그 뒤로는 전부 혼자 배웠다.

이런 사내와 꿈을 나눌 이가 어디 흔하겠나. 누나는 이런 날 두고 구제 불능 몽상가라 했지. 반박은 못 하겠다.

생각이야 종이에 적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종이는, 마음을 나르기엔 형편없는 그릇이더라.

시시한 투정이었다. 잊어 다오.

대신 부선장 이야기를 하나 적는다. 이 배에서 제일 정이 가는 사람이다. 채찍 한번 안 드는데도 선원들이 알아서 따른다.

몇 해 전, 그는 러시아 처녀와 혼약을 맺었단다. 살림 차릴 농장까지 사 둔 어느 날, 처녀가 발치에 엎드려 울며 고백했다. 마음에 둔 남자가 따로 있는데, 가난해서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부선장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 둔 농장을 통째로 연적에게 넘기고, 모아 둔 돈마저 얹어 줬다. 그러고는 처녀의 아버지를 찾아가 두 사람을 맺어 달라 빌었다.

영감이 끝내 거절하자 그는 아예 나라를 떠났다. 처녀가 제 사랑과 혼인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돌아왔단다.

누나라면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무릎을 치겠지. 이런 사내가 내 옆에서 키를 잡는다.

그러니 누나, 걱정은 반만 해라. 무모한 항해인 건 안다. 무모함과 무방비는 다른 말이다.

칠월의 편지는 짧았다.

배는 이미 높은 위도에 들어섰다. 바람은 차고, 돛은 팽팽하고, 선원들은 씩씩하다. 이따금 유빙이 뱃전을 긁고 지나간다.

돌풍 두어 번, 물이 새는 틈 하나. 편지에 적을 만한 사건은 그게 전부였다.

위험하냐고? 물론.

그런데 누나, 한번 결심한 인간의 심장을 대체 무엇이 막지?

"무리하지 않겠다. 침착하고, 신중하게."

출항 전 누나 손을 잡고 한 약속, 잊지 않았다.

누나. 여기서부터는 너무 기이해서, 적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글씨가 흔들려도 이해해 다오.

칠월 그믐, 배가 얼음에 갇혔다. 사방이 하얗게 닫히고, 그 위로 짙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우리는 빙판 사이에 낀 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유빙이 뱃전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잠드는 일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오후 두 시쯤 안개가 걷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벌판이 사방에 드러났다. 몇몇이 낮게 신음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반 마일쯤 떨어진 얼음 위였다. 개들이 끄는 썰매 하나가 북쪽으로 내달렸다. 썰매 위에는 사람의 형상이 서 있었다.

형상이라고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컸다.

거인이었다. 망원경 너머로 채찍을 휘두르는 팔이 보였다. 우리가 넋을 놓은 사이, 썰매는 얼음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갑판이 술렁였다. 여기는 뭍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빙원 한복판이다. 저게 대체 뭐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누군가는 뭍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뜻이라 우겼다. 위로가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밤 얼음이 갈라지며 뱃길이 열렸다. 그런데도 어둠 속으로 배를 몰자는 말은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갑판이 소란해 나가 보니 선원들이 뱃전에 매달려 바다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커다란 유빙 하나가 밤사이 배 옆까지 떠내려와 있었다. 그 위에 어제 본 것과 똑같은 썰매가 한 대. 개는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어제의 거인이 아니었다. 미지의 섬에서 흘러온 야만인도 아니었다. 유럽인이었다.

뼈 위에 가죽만 남은 몸으로, 꺼져 가는 두 눈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부선장이 외쳤다.

"선장님이 나오셨소! 당신을 이 바다에 버려두진 않을 거요!"

우리는 밧줄과 판자를 내렸다. 다들 어서 잡으라고 소리쳤다. 남자는 잡지 않았다.

다 죽어 가는 몸으로, 얼음 위에서, 갈라진 입술을 먼저 열었다.

"이 배는 어디로 갑니까."

내 귀를 의심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이 구조가 아니라 행선지부터 물었다.

"북극으로 갑니다."

남자의 얼굴에 그제야 안도가 스쳤다. 그리고 순순히 몸을 맡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 얼음이 내게 무엇을 건네준 건지.

남자는 이틀 동안 말을 못 했다. 사지는 얼었고 몸은 앙상했다. 살면서 그렇게 참혹한 몰골은 처음 봤다.

선실로 옮기자 정신을 잃어, 도로 갑판으로 데려 나와야 했다. 우리는 그를 담요로 감싸 난로 곁에 눕히고, 독한 술을 조금씩 흘려 넣었다. 이튿날에야 따뜻한 국물을 넘겼다.

기력이 좀 돌자 내 선실을 내줬다. 당직이 빌 때마다 곁을 지켰다.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남자의 눈은 대개 초점 없이 흐렸고, 어떨 때는 광기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때로는 이를 갈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다 못한 사람처럼.

그러다 누가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면 얼굴 전체에 빛이 번졌다. 그런 빛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사흘째 되던 날, 항해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쩌다 그런 얼음 벌판까지 흘러들었느냐고.

남자의 눈에 시커먼 불이 켜졌다.

"나에게서 달아난 자를 쫓는 중이오."

"그자도 썰매를 탔습니까?"

"그렇소."

"그럼 저희가 본 듯합니다. 당신을 건지기 전날, 개썰매를 모는 거인을 봤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거인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얼음 위 어느 길을 탔는지, 숨도 고르지 않고 캐물었다.

다 죽어 가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날부터 남자는 매일 갑판에 나왔다. 성치 않은 몸으로 난간을 붙잡고, 북쪽 얼음만 뚫어지게 살폈다. 다른 썰매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남자는 그 거인을 이렇게 불렀다.

악마.

누나, 이상한 고백을 하나 하겠다. 나는 이 사람이 좋아졌다.

한눈에도 부서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 잔해 틈으로, 한때 얼마나 높고 귀한 정신이었는지 비쳐 보인다. 조난자가 아니라 몰락한 왕.

말문이 트이면 또 얼마나 유창한지. 고르고 고른 말이 물처럼 흘렀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볼 때만, 그 얼굴에서 잠깐 그늘이 걷혔다.

평생 찾아 헤매던 친구를, 하필 얼음 바다에서 주운 셈이다.

친구가 그리웠다는 내 투정에 그는 조용히 답했다.

"나도 한때 친구가 있었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이었지. 그러니 우정이 뭔지는 아오."

"지금은요?"

"전부 잃었소.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고."

어제는 그 앞에서 내 꿈을 몽땅 털어놓았다.

북극점. 바늘을 당기는 힘의 비밀. 인류가 밟지 못한 마지막 항로.

"그걸 얻을 수 있다면 재산도 목숨도 아깝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생사쯤, 그만한 지식과 바꾸면 싼값이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얼굴에서 빛이 꺼졌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신음처럼, 그가 내뱉었다.

"불행한 사람. 당신도 나와 같은 광기를 마셨군."

"……예?"

"나도 그 잔을 들이켰소. 바닥까지, 남김없이. 그 끝이 지금 이 꼴이오."

그가 손을 내리고 나를 봤다. 그 눈빛을 뭐라 적어야 할지, 나는 아직도 말을 찾는 중이다.

"당신은 지식을 좇고 있소. 한때의 나처럼. 나를 이 꼴로 만든 길을, 지금 그대로 걷고 있지."

숨을 고르고, 그가 덧붙였다.

"부디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내게 그랬듯 당신을 무는 독사가 되지 않기를."

그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들으시오, 월튼 선장.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 당신은 그 잔을 스스로 내던지게 될 거요."

남자는 내일 아침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기이한 운명에 산산이 부서진 한 인간의 기록.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불렀다.

무덤까지 가져가려던 이야기였다고 했다. 그 결심을, 내가 바꿔 놓았다고. 내 뱃길이 자신이 걸어온 길과 너무 닮아서라고도 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을 작정이다. 낮에는 듣고, 밤에는 옮겨 적겠다.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누나에게 보내는 이 종이 위에.

그가 나를 붙들고 경고하던 순간, 그 타는 눈빛이 어쩐지 낯익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 매일 아침 거울 속에 있던 눈이었다.

누나의 예언은 반만 맞았다. 나는 지금 얼음 바다에 갇혔다. 갇히긴 했어도, 묻히진 않았다.

다만 이상한 확신이 하나 생겼다.

내일 듣게 될 이야기는, 내 항해보다 훨씬 멀고 추운 곳을 지나왔으리라는 확신.

그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