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봐줄 만은 하군
베넷 씨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빙리 씨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베넷 부인과 다섯 딸이 저녁 식탁을 에워싸고 온갖 방법으로 캐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접시 위로 내려앉는 시선뿐이었다.
“아버지, 그냥 말씀해 주세요. 잘생겼어요, 아니에요?”
리디아가 포크를 내려놓고 대놓고 물었다. 베넷 씨는 고기를 한 점 썰었다.
“젊은 분이라면 아마 말을 타고 다니시겠죠? 그렇게 큰 집을 사려면 재산도 상당하실 테고요.”
제인이 조심스레 짐작을 얹었다. 베넷 씨는 고기를 입에 넣었다.
“런던에서 오신 분이라면 이 동네 사람들을 좀 촌스럽게 보시겠네요. 아버지도 그런 인상을 받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가 멀찍이서 던진 미끼였다. 베넷 씨는 천천히 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결국 베넷 가의 여인들은 이웃인 루커스 부인의 입을 통해 남의 소식 듣듯 빙리 씨를 알게 되었다. 다행히 루커스 부인의 보고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윌리엄 경이 그를 만나 보고 아주 흡족해했다는 것이다. 무척 젊고, 놀랄 만큼 잘생겼고, 더없이 붙임성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다음 무도회에 큰 일행을 데리고 올 작정이라 했다.
춤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사랑에 빠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베넷 가에서는 빙리 씨의 마음을 두고 벌써부터 부푼 기대가 오갔다.
“딸 하나가 네더필드에 자리 잡는 걸 보고, 나머지도 그만큼 좋은 데로 시집가는 것만 보면요.”
베넷 부인이 남편을 향해 말했다.
“저는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며칠 뒤 빙리 씨가 답례 방문을 왔다. 그는 베넷 씨의 서재에서 십 분쯤 앉아 있다가 갔다. 베넷 집 딸들이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터라 아가씨들을 한번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본 것은 아버지뿐이었다.
아가씨들 쪽이 조금 더 운이 좋았다. 위층 창가에 붙어 서서 확인한 바로는, 그는 파란 코트를 입었고 검은 말을 탔다.
“파란색이야!”
“말은 검은색이고.”
곧이어 저녁 식사 초대장을 보냈다. 베넷 부인은 이미 살림 솜씨를 자랑할 요리 차림까지 다 짜 놓은 참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답장이 그 모든 것을 미루어 버렸다. 빙리 씨는 다음 날 런던에 가야 하는 사정이 있어 영광스러운 초대에 응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베넷 부인은 어리둥절했다.
“하트퍼드셔에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런던에 볼일이 있담?”
부인의 걱정은 곧 다른 쪽으로 번졌다. 이 남자가 이곳저곳 날아다니기만 하고 정작 네더필드에는 붙어 있지 않으면 어쩌나. 마땅히 눌러앉아야 할 사람이 말이다.
루커스 부인이 그 걱정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무도회에 데려올 손님을 모으러 런던에 간 걸 거예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돌았다. 빙리 씨가 무도회에 숙녀 열두 명과 신사 일곱 명을 데려온다는 것이었다.
“숙녀가 열둘이라고요?”
딸들은 그 숫자에 낙심했다. 하지만 무도회 전날, 위안이 되는 소식이 들어왔다. 런던에서 데려온 숙녀는 열둘이 아니라 여섯이며, 누이 다섯과 사촌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무도회 날 그 일행이 홀에 들어섰을 때 사람 수는 모두 합쳐 다섯이었다. 빙리 씨, 그의 누이 둘, 맏누이의 남편, 그리고 또 다른 젊은 남자.
빙리 씨는 잘생기고 신사다웠다. 표정이 밝고 태도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의 누이들은 누가 봐도 유행의 첨단을 걷는 세련된 여인들이었다. 매형인 허스트 씨는 그저 신사처럼 보인다는 것 말고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홀의 시선을 순식간에 끌어모은 것은 그의 친구, 다아시 씨였다. 훤칠한 키, 준수한 이목구비, 귀족적인 풍채. 그리고 그가 들어선 지 오 분도 안 되어 홀 전체에 한 가지 소문이 퍼졌다.
“연 수입이 만 파운드래요.”
신사들은 그를 두고 참으로 늠름한 사내라 했고 숙녀들은 빙리 씨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저녁의 절반쯤, 다아시 씨는 뜨거운 감탄 속에 있었다.
그러다 그의 태도가 사람들 마음을 돌려세웠다. 그는 오만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자기보다 아래로 보았고 무엇에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더비셔에 그 넓은 영지가 있다 한들 소용없었다. 그의 인상은 어느새 더없이 차갑고 불쾌해졌고, 그의 친구와는 비교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빙리 씨는 금세 홀 안의 주요 인사들과 모두 안면을 텄다. 활기차고 스스럼없었고, 한 곡도 빼놓지 않고 춤을 추었으며, 무도회가 너무 일찍 끝난다고 화를 냈고, 네더필드에서 자기가 직접 무도회를 열겠다는 말까지 꺼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친구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다아시 씨는 허스트 부인과 한 번, 빙리 양과 한 번 춤을 추었을 뿐이었다. 다른 숙녀를 소개받는 일은 거절했고 남은 시간은 홀을 이리저리 거닐며 가끔 자기 일행에게만 말을 건넸다.
판결은 내려졌다.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고 가장 불쾌한 남자.
모두가 그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하게 그를 성토한 사람은 베넷 부인이었다. 그의 태도 전반이 마음에 안 드는 데다 그가 자기 딸 하나를 모욕했다는 사실이 그 미움을 특별한 원한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딸이 바로 엘리자베스였다.
신사가 부족한 탓에 엘리자베스는 두 곡을 앉아서 쉬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일부 동안 다아시 씨는 그녀가 대화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서 있었다.
상대는 빙리 씨였다. 그는 친구를 춤판에 끌어들이려고 잠시 춤에서 빠져나온 참이었다.
“이봐, 다아시.”
빙리 씨가 친구의 팔을 잡았다.
“자네도 춤을 춰야 해. 이렇게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꼴은 못 봐주겠네. 춤추는 편이 훨씬 낫지.”
“안 추겠네.”
다아시 씨는 팔을 빼지도 않고 홀을 훑어보았다.
“내가 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잖나. 아주 잘 아는 상대가 아니면 말이야. 이런 자리에서는 도저히 내키지 않네. 자네 누이들은 이미 상대가 있고 그 밖에는 이 홀에서 함께 춤추고 싶은 여자가 하나도 없네.”
“왕국을 준대도 자네처럼 까다롭게는 안 굴겠네.”
빙리 씨가 소리쳤다.
“정말이지, 오늘 저녁처럼 상냥한 아가씨들을 이렇게 많이 만난 적은 없어. 게다가 보다시피 보기 드물게 예쁜 아가씨도 여럿이고.”
“자네는 지금 이 홀에서 유일하게 예쁜 아가씨랑 춤을 추고 있네.”
다아시 씨의 시선이 베넷 가의 맏딸에게 가 닿았다.
“아! 그 아가씨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워!”
빙리 씨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런데 동생 중 한 명이 지금 자네 바로 뒤에 앉아 있는데, 아주 예쁘고 아마 아주 상냥할 거야. 내 파트너한테 부탁해서 자네를 소개해 주게 하겠네.”
“누구 말인가?”
다아시 씨가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엘리자베스에게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시선을 거두고 차갑게 말했다.
“봐줄 만은 하군. 하지만 내 관심을 끌 만큼 예쁘진 않아. 남들이 외면한 아가씨에게 내가 나서서 관심을 보일 생각은 없네. 자네는 파트너한테 돌아가서 그 미소나 즐기게. 나한테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빙리 씨는 그 충고를 따랐다. 다아시 씨는 걸어가 버렸다.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남았다. 그를 향해 그리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고 있었다.
“‘봐줄 만은 하군.’ 딱 그렇게 말했어. 눈까지 마주치고 말이지.”
엘리자베스는 원래 활달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이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즐길 줄 알았다.
그날 저녁은 베넷 가족 모두에게 즐겁게 흘러갔다. 베넷 부인은 맏딸이 네더필드 일행에게 얼마나 큰 감탄을 사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빙리 씨는 제인과 두 번 춤을 추었고 그의 누이들도 제인을 특별히 대했다.
제인 역시 어머니 못지않게 기뻤다. 다만 훨씬 조용한 방식으로. 엘리자베스는 제인의 그 기쁨을 함께 느꼈다.
메리는 누군가가 빙리 양에게 자기를 소개하며 이 근방에서 가장 교양 있는 아가씨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키티와 리디아는 운 좋게도 한 번도 파트너가 없었던 적이 없었는데, 무도회에서 그 애들이 아직까지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분 좋게 롱본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사는 마을이자 그들이 주요 주민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베넷 씨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책을 들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토록 찬란한 기대를 모았던 저녁이 어찌 되었는지 상당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는 은근히 아내가 그 낯선 남자에 대해 실망하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곧 자기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 여보, 베넷 씨!”
베넷 부인은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말을 쏟아냈다.
“정말 즐거운 저녁이었어요. 정말 훌륭한 무도회였다니까요. 당신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제인이 얼마나 칭찬을 받았는지, 그런 건 본 적이 없어요. 다들 제인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말했고요. 빙리 씨는 제인이 아주 아름답다면서 두 번이나 같이 춤을 췄어요! 생각 좀 해 봐요, 여보. 정말로 두 번이나 췄다니까요! 그 홀에서 그분이 두 번째로 춤을 청한 사람은 제인뿐이었어요.
처음에는 루커스 양한테 춤을 청했죠. 그분이 그 애랑 춤추는 걸 보고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하지만 그분은 그 애한테 전혀 마음이 없었어요. 하긴 그 애한테 누가 마음이 있겠어요, 당신도 알잖아요.
그러다 제인이 춤을 추며 내려오는 걸 보고 완전히 반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누구냐고 묻고, 소개를 받고, 다음 두 곡을 청했죠. 그다음 두 곡은 킹 양이랑, 그다음 두 곡은 마리아 루커스랑, 그다음 두 곡은 다시 제인이랑, 그다음 두 곡은 리지랑, 그리고 불랑제는……”
“그 사람이 나를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겼다면.”
베넷 씨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춤을 그 절반도 안 췄을 거요! 제발, 그 사람 파트너 얘기는 그만해요. 첫 곡에서 발목이나 삐었으면 좋았을걸!”
“아! 여보, 저는 그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얼마나 잘생겼는지 몰라요! 그리고 누이들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라요. 그 드레스보다 우아한 건 평생 본 적이 없어요. 허스트 부인 가운에 달린 레이스가 말이죠……”
여기서 부인은 또 한 번 가로막혔다. 베넷 씨는 옷차림 묘사는 한마디도 듣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베넷 부인은 하는 수 없이 이야기의 다른 가지를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다아시 씨의 충격적인 무례함을, 몹시 씁쓸한 심정으로, 그리고 약간의 과장을 섞어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요.”
부인이 덧붙였다.
“리지가 그 사람 마음에 안 들었다고 손해 볼 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정말 불쾌하고 끔찍한 남자거든요. 마음에 들려고 애쓸 가치도 없어요.
어찌나 거만하고 자만심이 강한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여기 걷고, 저기 걷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같이 춤출 만큼 예쁘지가 않다니!
당신이 거기 있어서 그 사람한테 한마디 톡 쏘아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 남자가 아주 질색이에요.”

